다양한 출처에서 온 메시지
2025년 1월 15일 수요일
빛이 오고 있다.
2024년 11월 23일 뉴브라운펠스, 텍사스 주, 미국에서 Sr. Amapola에게 보내는 하느님 아버지의 메시지, 스페인어로 받아 적고 수녀가 영어로 번역함

써라, 딸아.
-뭘 쓰라고?
왕께서 오신다는 것.
왕께서 창조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
왕께서 시간과 거리를 지배하신다는 것.
그분의 왕실 홀은 십자가이다.
그분의 면류관은 고통이 되어 피가 된다.
정화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복된 혈, 그분께서 내 자녀들을 장식하는 혈. 왕실의 인을 받아 너희를 나의 소유로 만드는 혈.
모두 나의 것이다. 언제나 나의 것이다.
너희를 나와 결합시키는 피이슬.
너희가 자신들을 바치는 왕실의 예물, 그리고 그분을 통해 아버지인 나에게 돌아가는 길.
내 백성들아, 다른 나라들과 같아지기를 갈망하며…
[위 부분은 그리스도왕 대축일 강론 중에 받아 적힌 것이다. 받아적기는 이렇게 미완성된 채로 남겨졌다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12월 19일에 계속 이어받아 쓰시고, 12월 20일에 마무리를 지으셨다.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고통스럽고 불안했다.]
[2024년 12월 20일]
…나의 왕실 멍에를 거부하고 그들의 이성, 그들의 교만, 타락한 인간성의 멍에를 선호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것을 선호한다. (1)
[2024년 12월 19일]
이어서 하자, Florecita.
내가 은총을 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결실을 맺으며 적이 끊임없이 나의 소유를 더럽히려는 오물과 해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준다.
그분의 이름은 또한 “시기”라고 할 수도 있다. 신성한 권리와 정의에 따라 내 것이 모든 것인데 (2) , 적이 자신을 위해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는 갈망하는 것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 그의 목마름은 결코 끝나거나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하지 못한 채로 한때 그에게 속했던 것은 경멸했고, 더 많은 것을 갈망했다. 그리고 이제 심지어 한때 그가 가졌던 것 – 모든 것, 모든 것이 그로부터 빼앗겼다 – 증오와 교활함과 기만으로 나로부터 분리시킨 것에 성공한 것도 빼앗길 것이다.
모든 것이 되기를 갈망했기 때문에 가장 끔찍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내 자녀들아, 경계하라.
루시퍼는 나의 천사들 중에서 가장 지능적인 자 – 가장 고귀하고 외모상으로 나에게만 뒤쳐지는 권위를 가진 자였다. 그런데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라.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라] 그의 창조자의 마음을 상처 입히고, 내 피조물을 해치고 공포를 일으킨 것을 보라.
반성하라, 자녀들아.
경계하라.
그 시간에 너희 하느님을 위해 일어선 사람은 누구인가?
미카엘, 나의 가장 사랑하는 대천사.
루시퍼에게는 두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열등하다 – 그의 겸손과 사랑이다. 이것이 그가 정복했고, 정복하며 계속해서 정복할 이유이고, 이것이 내가 나의 천상 군대를 지휘하게 하고 나의 신비를 수호자로 임명한 이유이다.
나의 작은 위대한 미카엘 – 그의 외침은 그의 이름이 되었고, 그 외침은 영원히 울려 퍼질 것이다: “하느님과 같이 누가 있으랴?”
이 외침은 자녀들아, 루시퍼-사탄이 교만으로 너희 창조를 찢어버리고 지옥에 던져졌던 시간에 천둥처럼 울려 퍼진 것처럼 다시 한번 모든 피조물 전체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하느님과 같이 누가 있으랴?
너희 하느님과 같이 누가 있느냐, 그분께서 너희 자녀들을 위해 일어서시는가?
아이들아, 교만은 모든 것에 감염되었고 내 자녀들의 마음과 마음에 독을 주입하여 그들을 진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교만이 내 자녀의 시선을 가려 나를 인식할 수 없게 만들고, 더 이상 뚜렷하게 보이지 않자 그들의 시선은 안으로 향해 자신을 신이나 악마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볼 수 없는 것일 뿐이다: 나의 자녀들.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아라. 매 순간에. 모든 순간에. 나를 보는 것을 멈추지 마라, 아이들아.
만약 너희가 확고하게 나를 응시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허락하든 간에 나와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눈과 마음이 볼 수 없는 것들을 행할 수 있는 믿음으로 나의 빛 안에서, 진리 안에서 걸을 것이다.
얼마나 크고 필요한 믿음인지 보이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굳게 주장하는지? 그리고 왜 이 많은 시련과 희생, 고통 속에서 너희를 형성하는지, 너무나 외롭고 어둡고 기다리는 시간들 속에 뿌리내린 빛나는 믿음을 깊은 곳에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인지?
믿음이 가져다주는 겸손함, 내가 요구하는 것에 대한 순종, 그리고 사랑의 꽃피움과 정화. 나의 계획을 성취할 수 있는 용기. 너희 안에서, 너희를 통해 일하게 허락하기 위한 포기함.
[2024년 12월 20일]
무엇보다도 내가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 각각의 너희에게, 왜냐하면 각자는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 너희의 믿음.
그것은 이 땅에서의 여정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모든 헌신의 근본적인 제물이다.
이렇게 큰 혼란, 최고의 혼돈과 배신이 있는 시대에 왜 불굴의 믿음이 필요한지 보이는가?
아이들아, 이 믿음을 갈망해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자라게 하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
바위투성이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유익한 식물처럼 그들의 뿌리로 토양을 느슨하게 만들어 나의 비의 물이 들어가 부드럽게 하여 더 많은 씨앗들이 자라도록 해라.
믿음, 즉 너희의 하나님, 너희의 왕, 너희의 아버지를 믿는 것.
내가 너에게 말할 때, 나의 말씀을 믿을 때, 내가 약속한 것을 성취하겠다고 믿을 때, 비록 지연되는 것처럼 보여도; 너무나 많은 증오와 고통과 어둠과 신성 모독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을 믿는 것.
내가 너희의 말을 듣고, 너희를 사랑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더라도 매 순간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
이것은 지속되는 믿음,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와 나의 연합이다.
내 작은 자들아, 내가 네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안다; 나를 보고 싶은 갈망이 얼마나 큰지 [부드러운 미소]; 나의 이름을 이렇게 모욕하고, 나의 교회를 – 예수님을 그렇게 학대하는 것을 허락하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과 분노를 알고 있다.
나는 너희의 고통의 깊이를 본다, 내 자녀들아. 그것은 나를 감동시킨다.
그리고 나의 응답이 빠르게 온다. 나는 지배적인 혼란 속에서 너희를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빛을 보낼 것이다. 이 나의 말씀들은 곧 모든 가장 외딴 구석까지 비추기 위해 충만하게 내려올 눈부신 빛의 광선이다.
아이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약속한 것을 성취할 것이다. “하나 더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 나의 행동 없이 지나가는 또 다른 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 굳어진 많은 마음들에 내려온 무수한 은총들이 그것들을 부드럽게 하여 나를 향해 돌아서도록 하고, 믿음의 씨앗이 발아하고 자라기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다.
얘들아, 이 은총들은 마치 이슬처럼 내리는 것인데 너희는 고통과 함께 나의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얻은 것이며, 오랜 기다림 동안 끊임없이 시험받았던 믿음과 인내로 얻은 것이고 사랑과 신뢰가 가득한 시선으로 얻은 것이다.
평안히 있어라, 얘들아.
너희가 겪는 모든 것은 헛되지 않다.
평안히 있어라.
나는 항상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행동은 언제나 너희의 선을 위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이것을 잊지 마라.
내가 지금이 결정의 시간이라고 말했으니, 내 자녀들이 내가 주는 빛을 받아들여 내 목소리를 듣고 거짓 양치기의 목소리와 양털을 입은 이리들의 목소리와 구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혼돈과 모든 죄와 모욕의 결과로 지금 짙게 드리워진 나의 길을 따라 인도하도록 하여라, 그들이 눈이 멀고 귀가 먹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내 사제 아들과 주교들에게 결정적인 시간이다 – 나의 진리와 나의 이름을 지키고, 나의 집의 거룩함을 지키는 시간이며, 나의 성전과 나의 왕좌를 지키는 시간이다.
때는 거의 다 되었다. 선택해라, 자녀들아.
너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리고 내 작은 양떼여,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신성한 목자께서 자신의 양을 버리지 않으시니 다른 모든 목자들이 그렇게 하더라도 결코 너희를 혼자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얘들아, 더 큰 불안과 혼란으로 이어질 뿐인 많은 추론으로 자신들을 복잡하게 만들지 마라.
거짓 양치기들, 양털을 입은 이리들의 말과 행동 – 공개적이고 분명한 것뿐만 아니라 더욱 숨겨지고 눈에 띄지 않는 것들도 나의 예수님의 거룩하고 순수하며 단순한 말씀과 대조해 보라. 그들이 한 모든 것을 하나의 행위로 모아보라: 내가 그에게 요구했던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따르는 것과 편의와 증오 때문에 따르는 것의 차이를 알아차려라.
잘 살펴보아라, 얘들아, 겉으로는 똑같을지라도 – 비슷한 말과 행동일지라도 – 그 기원과 효과는 완전히 다르다.
필요한 순간에 배신자들을 드러내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너희를 가르치고 인도하며 빛을 주니 – 나를 단순함과 믿음으로 사랑하는 너희들에게 – 오류와 위험을 인식하고 형제들에게 빛을 주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말이다.
평안히 있어라.
모든 것은 내 손에 있다.
전부다.
절망하지 마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보신다. 너희의 하느님께서 이해하신다. 너희의 하느님께서 아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의 계명은 빛을 준다.
나의 예수님의 복음은 빛을 준다.
그분의 피는 빛을 준다.
그분의 얼굴은 빛을 준다.
그분의 심장은 빛을 준다.
수세기 동안 너희 형제들의 증언은 빛을 준다.
이 시대에 세상에 퍼진 나의 말씀은 빛을 준다.
얘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살고 있는 어둠 속에서 너희는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모든 장벽과 모든 어둠과 모든 증오와 공포를 꿰뚫는 무한한 빛, 모든 배신과 신성모독을 꿰뚫는 빛이다.
내 마음에서 너의 마음에 내려오는 빛, 내 예수님의 살로 이루어진 심장을 통해 – 아주 작은 아기의 심장; 당신에게 나의 입맞춤을 가져오기 위해 너무나 작아지시는 충만하신 하느님, 평화와 나의 약속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영원히 나와 함께 있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과 같이.
내 예수를 받아들이세요. 위로해 드리세요. 사랑하세요. 그분의 말씀을 들으세요.
얼마나 큰 사랑으로 그분을 당신에게 드리는지.
그리고 그분은 또 얼마나 큰 사랑으로 나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당신의 사랑을 모아 내게 드리며, 내 심장을 위로해 주십니다.
아이들아, 너희가 둘러싸인 무한한 사랑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랑 안에 머물라. 이 사랑 안에서 피난처를 찾으세요. 모든 희망을 이 사랑에 두어라. 매 박동마다 갈망하면, 너희의 보석이자 재산이며 갚음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아, 이 사랑의 용광로 속으로 주저하지 말고 뛰어드세요.
나의 사랑으로는 정화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추지 못하는 어둠도 없습니다. 위로해 줄 수 없는 슬픔도 없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도 없습니다.
이리 오너라, 아이들아. 그리고 구유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세요.
나의 충실한 군대여, 내가 너희를 축복한다.
특히 나에게 맡긴 가족들을 축복합니다. 자비를 간구하고 인내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 거룩한 밤에 그들을 구유로 데려가고 당신의 마음과 함께 내 예수님의 거룩한 빛 속에 놓으세요.
모든 “어둠”을 이 무한한 빛 안에 두세요. 모든 고통과 상처를, 혼란과 질문, 의심과 불안까지도요.
빛이 오고 있다, 아이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모든 것을 비추는 빛.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의 작은 이들아, 나의 군사들이여, 나의 어린 아이들아,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축복한다 +
나의 사랑 안에 머물라.
너희를 사랑하는 아버지,
너희를 축복하시는 신이시여,
백성을 위해 일어서시는 왕이시여.
약속된 것은 이루어질 것이다.
아멘.
참고: 각주는 신의 말씀이 아닙니다. 수녀가 추가한 것입니다. 때로는 독자가 특정 단어나 개념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또 다른 경우에는 그들이 말했을 때 신이나 성모님의 어조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작성됩니다.)
(1) 나는 항상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작은 공책에 메시지의 첫 부분을 써야 했습니다. 큰 공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몇 주 후, 군주께서 메시지를 계속하시기로 결정하셨을 때, 큰 공책이 있었고 그분은 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빈 페이지를 남겨두라고 말씀하셔서 작은 공책에 쓴 첫 번째 부분을 복사할 수 있었습니다. 미완성된 구절을 복사하고 있을 때, 그분께서 문장의 끝부분을 받아쓰셨습니다. 따라서 날짜가 다르며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중단에도 불구하고 메시지의 흐름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쉬웠지만, 오직 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2) 이 구절은 영어로는 매우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번역하기 어렵습니다. 원래 스페인어에서는 그분이 모든 신성한 속성과 우리에 대한 반응—숭배와 찬양, 사랑과 믿음, 순종과 감사 등—그것이 다른 누구에게도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적이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입니다.
(3) 여기서는 “목자”가 예상외로 대문자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주교와 사제의 직무와 구별하기 위해 교황의 직위를 지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말과 행동을 모두 볼 수는 없지만, 그분이 단순히 청중이나 연설 등 더 일반적이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검토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권위 있는 위치에 배치되고 있는지, 누가 승진하고 강등되는지 등을 말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종종 공적인 말보다 배신과 진정한 의도를 더 잘 드러냅니다.
(5) 그분은 계급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모든 거짓 목자를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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